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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새벽설교(요한일서 2장 1~11절)

by 장목사pastor 2021. 4. 22.

 

  1장에서는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위해 성도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쳤고, 이어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계명을 준수할 것과 형제 사랑의 실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절, 2절은 성도가 범죄하였을 때, 대언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여기 대언자라는 말은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데,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용어입니다. 변호자, 위로자, 협조자, 옹호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보혜사 라고 번역되어서 성령을 가리키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성도가 범죄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겠지만 만일 범죄하더라도 용서받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를 위하여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의 변호사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가 이 죄인의 벌을 다 받았으니 더 이상 이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라고 변호해 주시는 것이 대언자. 변호사입니다.

  3절에서 6절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진정으로 그분을 아는 자요, 참으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와 교제한다는 것은 그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데 사귀고 있다, 혹은 교제가 있다라고 말할수 없지 않겠습니까?

  3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성도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깨달아 알고, 그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에 그의 계명 즉, 주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주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이 가르치신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에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알고 사귐을 갖는 존재라는 증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 안에 진리가 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사랑으로 사귐을 가지는 존재라는 증거가 바로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 말씀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고 그 말씀대로 행할때에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며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삶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성도들에게 그가 행하시는 대로 또 그가 가르치신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11절은 성도들이 지켜야할 계명의 핵심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7절 8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헬라어에는 새롭다는 의미의 단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네오스인데, 최근의 것 새롭다는 것이죠. 이런 의미를 가진 단어이고, 또 하나는 카이노스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낡은 것이 새롭게 되었다는 의미의 새롭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7, 8절에 나타나는 새 계명이라고 할 때 이 ‘새’라는 단어는 카이노스라는 단어입니다. 전에 전혀 주시지 않았던 지금 새로 주시는 계명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주어진 계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을 우리 예수님께서 새로운 차원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강조하는 새 계명은 9-10절 말씀을 보면 사랑의 계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이 9절은 1장 6절의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2장 4절의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라는 구절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빛 가운데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두움에 있는 자라고 하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행하고 빛가운데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0절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여기 거리낌 이라는 단어는 덫, 함정, 올가미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환한 빛가운데 있어서 스스로 넘어지거나 실패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11절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우리가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을 다 꺼버리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눈이 있지만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사랑을 행하여 빛가운데 거하면 앞을 밝히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사랑을 행하지 아니하고 미움을 행하면 빛이 없는 것과 같아서 어두움가운데 방황할 수밖에 없고, 결국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만 613가지의 구약의 계명을 압축을 하면 10계명이 됩니다. 그 10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계명은 사랑으로 요약되고 압축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우리가 확인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그런 우리가 정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우리에게 순종하기를 요구하신 이웃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실천이 없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말씀의 거울로 비춰보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이런 실제적인 사랑의 실천이 풍성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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