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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새벽설교(요한일서 3장 13~24절)

by 장목사pastor 2021. 4. 22.

  앞단락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성도는 마땅히 불법을 행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성결케해야함을 가르친 사도요한이 313절에서 421절까지는 앞서 교훈한바를 더 심화시켜서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형제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여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13절에서 16절은 성도가 형제를 사랑해야만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악한 세상이 거룩한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우리 예수님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을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여기 보면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라고 했는데, 요한복음에 524절에 보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원인이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를 보면 본문 14절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믿음이 있는 줄 알거니와라는 의미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믿음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형제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자이므로 죄 가운데 그대로 있게 되고 따라서 죄의 값인 사망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말을 14절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굉장히 강한 표현 아닙니까? 이런 표현을 그리스도의 고감도윤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슨 의미냐면, 구약에서는 계명이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이 간음이라는 행위를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우리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 라고 말씀도 하셨고, 형제들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사람 역시 살인을 한 자와 동일한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동을 해야 죄가 아니라, 그 마음에 생각하기만해도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 이것을 우리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아주 엄하게 다루시는 죄라는 의식을 우리가 가져야 쉽게 형제들을 이웃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형제 사랑은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16절에서 이야기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드려서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 너무나 놀라운 위대하고 큰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서 목숨을 버리는 것도 마땅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17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을 받은 내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썩어질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형제를 도와줄 생각도 안한다면 그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8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여기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음에도 없이 말만 사랑한다고 하며 실제적인 어떤 행위도 따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사랑을 말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로 고백한 사랑이 진실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여기 요한이 지적하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니라 참된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혀로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말로 사랑을 표현하고 그것을 참된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의 걸맞는 실제적인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 2151617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우리야 입버릇처럼 사랑 사랑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의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말 그것이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1920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을 진실하게 행할 때에 그것이 성도가 진리, 즉 그리스도께 속한 자인 것을 확정하는 것이 될 뿐만아니라 그런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124절은 우리가 형제사랑의 계명을 기쁘게 순종할 때에 가지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형제사랑을 행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습니다.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우리가 기쁘게 형제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내가 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느냐는 책망을 받을 것이 없으면 하나님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대로 순종하여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기쁘게 행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주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오늘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제적으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가르치고 또 그런 계명을 순종하여 행할 때에 주신 우리가 받는 은혜도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제 사랑을 기쁘게 실천하여서 더 나아가서 우리 이웃들, 열방에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의 섬김과 베품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랑을 우리가 기쁘게 순종으로 실천할 때 주님은 그 일을 기뻐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의 확정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앞에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에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또 그런 우리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를 아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인정하게 될 것이고 또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아직 어린 성도들이 아 성숙한 신앙인,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렇게 사는 거구나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저들에게 선한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삶의 현장에서 이런 사랑이 넘치게 나타나고 보여지는 그런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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