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행복한 가정(시편 128:1-6)_가정의 달

by 장목사pastor 2021. 5. 8.

한 가정이 교회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뉴욕 교육위원회가 두 사람을 선정하여 그들의 후손 5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한사람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의 제1대 총장이며, 경건한 신학자요 목사인 죠나단 에드워즈 가정이고, 또 한사람은 뉴욕에서 술집을 경영하여 큰 거부가 된 마커스 슐츠의 가정입니다.

먼저 에드워즈는 신앙이 좋은 청년으로, 믿음 좋은 여성과 결혼을 하여 신앙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그의 5대까지 후손은 729명인데, 그 중 목사가 300명, 대학교수가 65명, 대학총장이 13명, 과학자 21명, 베스트셀러작가 50명, 국회의원 4명, 부통령이 1명 배출되었습니다.

반면에 슐츠는 자기와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후손은 1,062명이었는데, 그 중에 300여명이 일찍 죽었고, 100여명은 평균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했고, 190여명이 매춘부였으며, 100여명은 술과 마약 중독자가 되어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이들로 인해 지출된 국고가 무려 1억 5천만 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뉴욕 교육위원회의 보고서는 복된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오늘의 성경은 요나단 에드워즈의 집안처럼 복된 가정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주일 이 아침에 ‘행복한 가정’이란 제목으로 말씀 받고자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어떻게 시작될까요?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

본문 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경외”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두려움”이란, 정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거룩을 깨닫게 될 때, 발생하는 인간의 감정을 가리킵니다. 그 결과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경배, 찬양 그리고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산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창5:24). 에녹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깨닫고, 동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창1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의 경외가 나타났습니다.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 경외는, 악에서 떠나는 경건한 삶으로 나타났습니다(욥1: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악에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했습니다(신6:5).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히11:26).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라 했습니다(요4:24).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살전2:13).

이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뢰하고 사랑한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행복에 대해 말하기를,

시편 111편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14장 2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3장 6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고 했습니다.

성도님,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은 복된 가정입니다.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2.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가정

본문 1절에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도” 란, “그 길”, “그 방향”, “그 방법”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길,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방향,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는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생명과 행복으로 안내하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시편을 기록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하였습니다(시119:105).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향,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으면 인생의 진정한 행복에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도, 보람도 얻을 수 없습니다.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고, 그 집을 구원하였습니다(히11: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11:8). 그 결과 히브리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심판의 유항 불에 죽고 말았습니다. 롯의 처는 두고 온 가산(家産)이 아까워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10:2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님, “그 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설교를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생활에 실천함이 행복한 가정입니다(살전2:13).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발에 등불이요, 길에 빛으로 삼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무엇일까요?

 

3.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를 행하는 자가 받을 복

  1) 노동의 열매를 얻는 복입니다.

본문 2절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노동이란 결코 힘든 고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땀(노동)의 대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그 수고의 열매를 먹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말할 때,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과 사치와 부와 명예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적인 것이며, 설령 이것을 가졌다 한들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먹을수록 갈증을 느끼고,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데로 먹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건강한 노동관을 말합니다. 그리고 인생에 물질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님, 먹고 마시는 것이 인생의 최대, 최상의 행복이 아닙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육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종교성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종교성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종교성은 영생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더 나은 본향, 천국을 소망하고 삽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데로 먹을 것이라”는 것으로 양식을 공급받게 됩니다.

  2) 가정에 있는 아내의 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자의 아내는, 어떤 아내입니까?

본문 3절에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라고 했습니다.

여기 “내실”은 아내의 활동 무대를 가리킵니다. 아내가 내실에 있다는 것은, 여인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남편의 다정한 내조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정숙하고 경건한 아내의 모습입니다. 결코 축복받은 가정의 아내는 남편의 지위를 무시하고, 지붕 위에나, 성문에 올라가지 아니합니다. 아내는 내실에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또 본문 3절에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포도나무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과목입니다.

왜냐하면 건조한 지방에서 포도 열매는 주민들의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사람들은 포도나무 그늘 아래서 안식하고, 평화를 누립니다. 그리고 다시 일할 힘을 얻게 됩니다(왕상4:25).

여기 아내가 포도나무 같다는 말은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될 아내의 위치를 말합니다. 자기 본분을 이탈하지 않는 아내를 말합니다. 이는 남편이 가정에서 아내를 통해 쉼과 평화와 새 힘을 얻게 된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뿐 아니라 본문은 “결실한 포도나무”같은 아내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아내의 역할을 말합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자는 아내를 통한 내조와 가정의 안식과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아내의 축복을 약속합니다.

  3)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의 복입니다.

본문 3절에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라고 합니다.

큰 감람나무 아래에는 새 싹이 나오는데, 이것을 “어린 감람나무”라고 합니다. 설령 감람나무가 베어진다 해도,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자라납니다. 어린 감람나무는 크고 푸르게 자랄 것입니다. 신선함과 활력을 가질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의 자식은,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장합니다. 창대합니다. 이것은 부모의 꿈이요, 소망입니다. 어린 감람나무가 크게 자란 후에는 부모를 그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쉬게 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기쁨과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면류관입니다.

성경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 했습니다(시127:3).

그러므로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이 있는 부모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전통에 가득한 화살같이 날아갈 자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자는 이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성도님, 우리 중에는 이미 자식의 생각과 삶을 제어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는 부모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깨우치시고, 성장시키며, 옳은 길로 이끌어 주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어린 감람나무 같이 자라게 해 주실 것입니다.

  4) 교회를 통해서 받게 되는 복입니다.

본문 5-6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 “시온”은 “밝은 빛이 비치는 곳”이란 뜻인데,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를 축복하시되, 교회를 통하여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노동의 열매와,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아내와,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의 축복은 시온, 즉 교회를 통해서 찾아 옵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교회사에 나타난 복 받은 개인, 가정은 교회를 떠난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무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교회를 만홀히 여긴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잘 되는 복, 하나님의 교회가 잘 되는 복을 볼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것은 성도가 한 평생 누리는 축복은 교회운동과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흥망은 축복의 원천인 교회의 부흥과 직결된 것입니다. 이유는 성도와 교회는, 몸의 여러 지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포도나무 둥치에서 꺾이거나 떨어진 가지는 아무런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종교 개혁자 루터는 “가정은 크리스천의 인격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규정해 놓으신 장이다”고 하였습니다.

스펄젼은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배될 때, 천사들이 그들과 동거하며 그들의 식구가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가정을 원합니다. 그리고 복된 가정에서 살고 싶은 것이 모두의 꿈이요 이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TV와 신문을 보면,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핀잔을 준다며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합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등 끔찍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패륜카페까지 등장했습니다. 한 카페에는 초중고생 600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데, 자신을 엄마와 아빠의 안티라고 자처하면서 “나를 왜 낳았냐!” “엄마가 짜증난다!”는 글부터 “아빠가 죽었으면 한다!”는 식의 끔찍한 험담으로 증오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보도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 사이에 가족을 상대한 범죄가 2배 가까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가정은 온갖 죄악들로 몸살을 알고 있습니다. 돈이 생의 기초요, 전부가 되어버린 사상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IT기기의 발달과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자신의 편의와 욕구충족이란 자기를 사랑함이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즉 인본주의 가정관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아니, 인간의 속에 있는 부패된 마음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치료가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할 때, 그 가정의 행복이 회복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정에 도동의 열매가 맺히게 합니다.

아내를 통한 평화와 즐거움과 안식이 있게 합니다.

자식을 통한 내일의 소망과 승리가 있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축복을 당신이 피로 값 주고 산 거룩한 교회를 통하여 베풀어 주십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고 있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