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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새벽설교(히브리서 2장 10-18절)

by 장목사pastor 2021. 4. 25.

  앞 단락에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살폈습니다.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 과 동등한 분으로 천사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우월하신 존재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분이 비천한 우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고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의 자리에 떨어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인 것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의미를 더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10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여기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는 만물의 원인, 곧 창조주이자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관자의 힘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신약의 서신서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자 만물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승리하시는 분이 힘을 선언하는 신앙고백들 여러 곳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만 한두 곳 살핀다면 로마서 11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또 골로새서 116절에서 18절의 말씀은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 하늘과 땅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왕권, 주권, 통치자, 권세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 히브리서를 왜 썼다고 말씀드렸나요? 유대인들 특히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핍박을 너무 많이 받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시다 그러니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아라. 너희가 지금 제대로 믿고 있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가 이런 분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께서, 이런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셨다. 원래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신데, 낮아지셨다. 왜냐하면 10절 중간부터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의 창시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고난을 통하여서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는 이 말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서 구원을 이루시는 그분이 친히 낮아지셨고, 그 낮아지신 고난을 통하여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성취 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의 낮아지심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런 낮아지심을 통하여서 이루신 일이 무엇입니까? 11, 12절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여기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얻은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낫다고 하고 그래서 형제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미 16절에서 그리스도를 맏아들이라 칭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성도들은 한 형제라고 하여서 교회의 성격을 특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222절에는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라고 하면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안에서 한 형제 된 성도들이 주를 찬송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또 받은 바 은혜를 증거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혹은 예배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1, 12절에서 성도를 주안에서 형제라고 한 히브리서 저자는 13절에서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 그렇게 칭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3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여기에서도 구약 이사야 817, 18절을 인용하여서 구원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하고 있는 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주 안에서 한 형제를 삼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셨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  7, 18절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받으셨기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주님이 우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자신이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고난을 친히 당하심으로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도우시기 위함이라는 은혜가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에 한번 집중해서 묵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고난을 통하여, 또 고난을 잘 극복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역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에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귀한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라면 우리 자신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기 때문에 무조건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16절에서 18절은 우리에게 귀한 진리를 가르침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비교할 수 없도다

  물론 이 한글 개역 본문에는 족히라는 단어가 빠져 있지만 이전 개혁 한글 성경에는 족히라는 단어가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게 될 상속자라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를 향하여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고난, 주님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따르는 것은 우리에게 마땅한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이 복된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고난을 면류관으로 생각하고 그 고난을 기쁘게 지고가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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