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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새벽설교(히브리서 4장 1-13절)

by 장목사pastor 2021. 4. 28.

  앞 단락에서 모세보다도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논증하는 가운데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약속의 땅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들어 성도들에게 서로 돌아보고, 주의하고,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동일한 내용을 재차 교훈하지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10절은 성도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출애굽 하였지만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여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여기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이 말씀은 3장 마지막 부분인 18, 19절의 내용을 말합니다. 3장 18, 19절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출애굽 했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저들이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다시 1절을 보면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여기 ‘약속’이라는 말은 에팡겔리아라는 단어인데 공적으로 선언된 말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 백성을 안식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공적으로 약속하셨는데 ‘그런데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노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르지 못할 자’는 목표에 미치지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그렇게 하셨지만 실제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이렇게 실제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왜 일어날까요? 2절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여기 ‘그들과 같이 우리도‘ 그랬습니다. 여기 그들은 출애굽 당시에 1세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말합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의 안식이라는 축복을 약속 받았던 것처럼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이라는 축복을 약속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좋은 약속을 받았다 해도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이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는 복음을 주셨지만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믿음으로 반응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한 사람도 그 안식의 복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두려운 교훈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받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예를 들어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경고를 함과 동시에, 그러나 신약시대 성도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으니 이를 거울 삼아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라. 그렇게 지금 계속 10절까지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대로 선택하신 신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지만 우리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그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 답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힘쓰고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그 귀한 은혜를 받고 마치 따놓은 당상처럼 구원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무분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들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순종의 여부입니다.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구원의 은혜를 받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서도 저들은 그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이 없었음을 우리가 주목해야 됩니다.

  오늘 소위 신앙 생활을 좀 한다고 하는 우리에게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 믿음 하지만 참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서 순종하는 것이고, 그런 순종이 참 믿음임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 믿음인지를 살펴야 되는 것입니다.

  12절 1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하다가 저자는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삶의 결산을 가지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심판의 기준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그런 삶의 결산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것은 굉장히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하며 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이런 존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한가, 너무나 귀한 말씀인데 그 말씀을 통하여서 나는 어떤 변화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내 삶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본문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 자신의 인격과 삶의 변화를 누리는 축복이 빠르기를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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