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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새벽설교(히브리서 6장 13절- 20절)

by 장목사pastor 2021. 4. 29.

  6장 11절, 12절에서 성도들을 향하여 낙심하지 말고 모두가 성도다운 선한 행실과 그에 따라 주어질 영광스러운 소망을 바라보면서 특별히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과 인내로 약속된 기업을 받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권면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1절, 12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게으르게 하지 않고 정말 부지런하여 열심을 가지고 주를 섬기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 받은 바 있는 것입니다.

  이 권면과 연결하여서 본문 13절에서 15절에서는 본받아야 할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13절에서 15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그 약속의 성취를 받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창세기 12장에 나타나셔서 고향 친척집을 떠나서 내가 내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또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가운데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나아갔다 라고 합니다. 그 순종 때문에 그는 약속 되어진 놀라운 복을 그대로 받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하나님께서 본문 말씀에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내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약속하셨음을 말씀을 하시고 15절에 아브라함이 이 같이 오래 참아서 약속을 받았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맹세는 약속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한 강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맹세는 중요한데 또 맹세는 누구를 걸고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신실성의 확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16절 말씀.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한다든지 약속을 하고 내가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고 하면 그만큼 내가 하는 그 약속의 신실성을 보장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겁니다. 더 이상 말할 것 없이 모든 논쟁을 중지시키는, 그것으로 더 이상 무엇이 필요 없다 하는 효력을 가진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우리 하나님은 약속의 주체가 되는 동시에 약속을 보장하는 중보자가 되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은 절대로 변할 수 없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보정을 하신 것입니다.

  18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맹세에 보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실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 자체가 변치 않을 언약이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까지 하셨으니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이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행하는 우리 성도에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은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라고 비교를 합니다.

  흔히들 인생을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삶을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잠시 정박을 할 때는 닻을 내립니다. 이 ‘앵커’ 닻을 내리면 이 닻 때문에 파도와 물결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의 닻과 같다. 그 말씀은 배를 견고하게 붙들어주는 닻과 같이 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닥쳐오는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시험의 풍랑에 맞서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에서 떠나서 실족하거나 혹은 세상의 유혹들에 죄의 유혹들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19절의 영혼의 닻은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주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망이 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성도는 튼튼하고 견고하게 즉 안전하게 휘장 안,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우리에게 확증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절,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여기 ‘앞서가신’ 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선구자 혹은 척후병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런데 신학 성경에는 여기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계속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몸을 친히 희생 제물로 들이셔서 모든 인간을 대표해서 먼저 우리 앞서서 하나님 보호자로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장의 모형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다음 7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은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나는 믿는다, 나는 구원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붙들고 그것을 의지할 때에 우리의 믿음의 진군을 가로막는 어떤 것들도 극복할 수 있고 고난도 참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하여서 항상 순종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가짐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의 신앙 생활의 자세를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그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됐다 이만하면 됐다.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부름의 상을 소망하면서 달려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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