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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새벽설교(히브리서 7장 1-10절)

by 장목사pastor 2021. 4. 30.

  성도들의 영적 미성숙을 책망하면서 잠시 중단했던 멜기세덱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에 관한 설명을 다시 7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어떤 존재입니까?

  1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무런 사전 언급이나 그의 족보에대한 소개도 없이 갑자기 멜기세덱이 등장합니다. 신화를 비롯한 4개국 연합군이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해서 소돔에 거주하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아가고 그 재물까지 노략해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이 집에서 훈련한 가신 318명을 데리고 추격하여서 롯도 구출하고 노략질해간 모든 재물을 되찾아오게 됩니다. 이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영접했던 사람이 멜기세덱입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은 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을 창세기에서 보게 됩니다.

  창세기 14장 18-20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이 창세기 14장의 말씀처럼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환영하며 축복을 하였고 아브라함은 자신이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멜기세덱을 본문말씀에서도 살렘왕이라고 했습니다. 이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으로 추정을 할 수 있는데, 이 멜기세덱은 고대 예루살렘의 왕으로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아무도 미치지 못할 초월적인 신성을 가진 하나님을 가리키는 구약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멜기세덱은 왕이요 동시에 제사장, 이 두 직분을 겸하여 가진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무슨 뜻이겠습니까?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았던 아브라함이 자신이 가졌던 모든 전리품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입니다. 이것은 십일조의 효시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의미에서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 그렇게 불려지고 살렘왕이라는 이 이름에서 살렘이 평강아닙니까? 평강의 왕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의의 왕, 평강의 왕인 이 멜기세덱은 대단히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여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다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에 관헌 언급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또 이는 그가 제사장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레위지파에 이 아론의 반열에 속한 제사장인 경우는 아버지가 아론, 그래서 그 아론의 후손이어야 하고, 어머니는 레위지파의 정숙한 여인이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28장 1절과 레위기 21장 7절이 그 규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된 것은 이런 조건과는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런 조건을 초월하여서 하나님께서 그를 제사장으로 그렇게 임명한 것은 그리스도를 예시한 것이라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말도 그는 영적인 존재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언그비 성경에 전혀 없으니까 우리는 다만 이 창세기 14장에 기록된대로 그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사실만 영원토록 기억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닮아서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이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언급한데 이어서 멜기세덱이 이스라엘 역사상 제사장직을 담당했던 레위지파의 제사장보다는 우월함을 이어서 논증을하고 있ㄴㄴ 것입니다.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은 멜기세덱이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다는 사실을 들어서 그는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4절, 5절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사실과 그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이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바쳤다는 사실을 보면 이 멜기세덱은 레위의 제사장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말씀이 이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축복하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6절, 7절을 보십시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그렇다고 하면,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은 그만큼 높은 자라는 것입니다.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이 율법의 규례를 따라서 제사장 직임도 하고, 백성들의 십일조도 받지만 그들은 죽음과 함께 그 직임도, 사역도 중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가르칩니다.

  8절.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여기는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을 말하고 저기는 멜기세덱을 가리킵니다.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은 죽을자들이고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 이 말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3절에서 우리가 살폈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레위지파에 속한 아론의 반열의 제사장들과는 다른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것으로 레위지파도 이 멜기세덱에게 바친것과 마찬가지라고 9절, 10절이 가르칩니다.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이것은 대표성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죠.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보지도 못한 멜기세덱이지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그에게 바쳤기 때문에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도 바친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멜기세덱은 이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을 논증한 것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이 구약의 아론의 반열에 속한 제사장들과는 비교될수 없이 우월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물론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그 제사장적인 사역을 통하여서 우리가 누린 은혜자체도 크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과 섭리를 본문말씀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때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그 자체에 이미 하나님의 깊은 구원계획과 그 뜻을 이루어가시는 세밀한 손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은혜가 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는 너무나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감사하면서, 더욱더 하나님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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